#빗살무늬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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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글

25. 파미르와 바이칼, 환국 중심지 논쟁의 진실

2026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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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유라시아 지도를 책상 가득 펼쳐놓고 그 끝에서 끝을 손가락으로 훑어보다 보면, 지도라는 평면적인 종이 한 장에 다 담지 못한 고대의 거대한 숨결이 제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우리 역사의 중심이 한반도라는 작은 틀 안에만 있었다고 알고있었는데, 시야를 넓혀 파미르와 바이칼이라는 거대한 두 축을 마주하는 순간 제가 가졌던 편견이며, 나라가 성장한 지금도 우리 한국사을 배우지 아니 가르치지 않는 현실이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신화'라고 가르쳐왔고, 알고있던 수천 킬로미터에 걸친 유물의 흔적과 마주 서있는 지금, 저는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터전의 시원이 얼마나 웅장한 네트워크였는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23. 빗살무늬에서 민무늬로, 토기 기술의 변천

2026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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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문양의 빗살무늬토기와 밋밋하기 그지없는 민무늬토기를 박물관에서 나란히 마주했을 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처음 근거없는 막연한 혼자만의 생각으로 무늬가 사라지는 것이 기술의 퇴보라고만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친 흙의 질감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 속에 담긴 조상들의 소중한 삶을 떠올려 봤습니다. 순간, '시대의 요구'라는 실용성 앞에서 미적 감각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원전 7197년경 바이칼에서 시작된 빗살무늬토기의 역사에서부터 이미 고도의 기술적 진화를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7. 암사동 그물추, 한강을 터전으로 삼은 어로 생활

2025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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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무는 한강 변을 걷다 보면, 강물 위로 부서지는 노을이 마치 7천 년 전 누군가가 던졌을 그물의 파동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예전에는 박물관 유리창 너머로 본 그물추들이 그저 흔하디 흔한 조약돌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 투박한 돌로된 그물추 속에 가족의 끼니를 걱정했던 어느 가장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강바람마저 따뜻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고단한 삶'이라는 단어가 강물 소리에 흩어질 때,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터전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우리를 품어왔는지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5. 서울 암사동 움집, 설계된 정착과 공동체 생활

2025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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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암사동 유적지의 움집 안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 7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묘한 기류를 느꼈습니다. 사실 그냥 땅을 판 구멍에 지붕을 올린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서늘하면서도 포근한 공기는 제 선입견을 여실히 깨트려 놓았습니다. '미개한 원시인'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정도로, 암사동 움집에는 당시 사람들의 치밀한 설계와 공동체적 배려가 군불 지핀 구들장처럼 마음을 묵직하게 파고들었습니다.
대-한민국

3. 빗살무늬토기의 여정, 바이칼에서 암사동까지

2025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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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고요한 전시실 한가운데, 뾰족한 밑바닥을 가진 빗살무늬토기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사실 저도 얼마 전 서울 암사동 유적지를 다시 찾았을 때, 흙으로 빚은 이 투박한 그릇 하나가 견뎌온 6천 년의 세월이 제 어깨를 묵직하게 누르는 것 같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대-한민국